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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경태
작성일
 
2011/03/04 19:16:29
조회수
2474
글제목
 
관상 기도와 명상의 위험성
링크
 
http://cafe.daum.net/dm3179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은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면 좀 더 믿음이 완벽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릅니다. 방법을 안다고 해도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사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적을 경험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현대 성도들이 하나님을 체험하거나 다른 신비를 체험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성도들의 욕구를 만족하게 하려고 새로운 기도방법을 제안하는 경우를 봅니다. 관상과 명상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깊은 기도를 하려면 관상과 명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가톨릭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교 안에도 관상과 명상을 통하여 기도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목사님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의 방법은 성경에서 권하는 기도의 방식이 아닙니다. 아주 위험한 기도의 방법입니다. 잘못하면 사단의 꼬임에 빠져 헤어날 수 없게 됩니다. 서구에서는 관상과 명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그것이 신비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불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기독교를 택한 사람들이 다시 불교의 명상이나 관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것이 웃기지 않습니까? 서구에서 유행하는 것이면 그것이 성경의 방법이든, 아니든 받아들이고 보자는 어리석은 목회자들에 의해서 성도가 위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관상의 기도와 명상은 인간의 의지로 하나님에게 도달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듯이, 야곱이 잡자는 중에 환상을 보았듯이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찾아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관상 기도나 명상은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내는 환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환상과 다릅니다. 일종의 자기최면 기법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빛의 천사처럼 행세하는 것처럼 비슷해 보이나, 사실은 가짜입니다. 거기서 들은 것은 내면의 소리거나 자신의 소원을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기도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관상 기도나 명상처럼 고요한 상태에 들어갑니다. 나는 기도할 때 소리치거나, 손을 들거나, 뒹굴면서 기도합니다. 20분이나 30분의 시간이 흐르면 이제 더는 소리치거나 손을 흔들거나, 뒹굴지 않습니다. 더는 지쳐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깊은 상태에 빠지면 더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관상 기도하는 사람과 명상을 하는 사람들처럼 호흡에 신경을 쓰거나, 조용히 명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깊은 기도에 빠지게 되며, 그때는 시간이 사라집니다. 두세 시간이 금방 흐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에 빠지면 확신이 생깁니다. 마음이 안정됩니다. 평안과 기쁨이 생깁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나는 기도 중에 말씀에서 벗어나는 어떤 계시도 받지 못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위로와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영적 은사도 받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체험은 이렇게 깊은 기도를 하는 가운데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깊은 기도로 들어가는데 방법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소리없이 기도하든, 외치는 기도를 하든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런 체험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여러분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호흡에 의존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므로 최면 상태에 빠지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단지 두 가지만 명심하십시오.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십시오. 나는 기도에서 이 방법밖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마 뮬러 목사님이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은 이렇게 꾸준히 매어 달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매달리는 자녀의 기도를 결코 거절하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영성의 기도가 있다면 늘 하나님에게 나의 시간을 드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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