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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경태
작성일
 
2011/05/04 23:46:24
조회수
2344
글제목
 
[경건인가, 영성인가?] 송삼용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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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건인가, 영성인가?(송삼용 목사)
 
 
 <존 칼빈(John Calvin): 경건영성>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개혁의 기치를 들고 목숨걸고 싸웠던 칼빈은 기독교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16세기 이후 정치, 경제, 문화, 윤리 등 다양한 부분에서 유럽과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프랑수아 방델(F.Wendel)에 의하면, 칼빈은 “한사람의 사상가를 훨씬 뛰어넘는 인류의 지도자”였다. 칼빈에 대한 이런 찬사들은 종교 개혁 이후 지금까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최근에 칼빈의 생애에 대해서 정밀한 분석과 연구로 「칼빈의 삶과 종교개혁」을 집필한 김재성 교수의 찬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가장 탁월하게 구사한 최고의 지성인이요, 제너바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한 목회자이자 당대 최고의 신학자이요, 성경에 능통한 주석가이자 설교자요,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교훈을 던져 준 영혼의 목자”였다.
 
 
 
 경건인가? 영성인가?
 
 
 
 이에 버금가는 것으로서 본 연구의 주제에 합당한 찬사는 칼빈의 경건에 대한 극찬과 평가들이다. 일부에서는 칼빈이 위와같은 지도자로서 기독교계에 끼친 놀라운 영향력의 근본을 경건한 신앙에 돌리고 있다. 동일한 관점에서 필립 홀트롭(Philip C.Holtrop)은 칼빈의 신학을 "경건신학"으로 부른다. 「칼빈의 경건」(The Piety of John Calvin)을 연구한 배틀스(F.L.Battles) 역시 그의 신학의 핵심은 “경건”에 있다고 주장한다. 칼빈 신학의 결정체요, 사상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 강요」의 핵심도 경건에 있다.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의 출판 목적에 대해서 쓴, 발행인에 의해 덧붙여진 것으로 보이는, 문구는 이를 입증해 준다: 경건의 전체와 구원 교리에서 필히 알아야할 거의 모든 것을 포함한 이 저작은 경건을 사랑하는 모든 이가 읽을 가치가 있으며, 최근에 출판되었다.
 
 
 
 칼빈 자신도 프랑스 왕 프랑시스 1세에게 다음과 같이 저술 동기를 밝혔다: 저의 의도는 종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개요를 알려드림으로서 참으로 경건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 저의 의도가 그러했다는 것은 본 서 내용을 보시면 명백해집니다만 단순하고 꾸밈없는 기본적인 형식으로 설명하여 누구든지 배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칼빈은 「예레미야 주석」, 「에스겔서에 대한 강좌」, 「요한복음 주석」 등 여러 저서 곳곳에서 경건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처럼 칼빈의 신학과 사상 및 삶에 있어서 경건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실로 그의 경건은 마땅히 높이 평가되어야 하며, 만인으로부터 극찬받아야 할 부분이다. 그 만큼 칼빈은 신학적으로는 경건의 신학을 정립했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는 진정한 모델을 보여준 경건의 대가였다.
 
 
 
 본 연구의 논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칼빈의 경건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이고 밀도있게 분석함으로서 개혁주의 영성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원래 칼빈은 영성이란 용어를 사용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김재성 교수는 ‘칼빈의 영성’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신학의 방법론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리차드 갬블(Richard C. Gamble)를 인용하면서 “16세기에 살았던 칼빈에게 20세기 신학자들의 개념을 가지고 대입한다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옳지 않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20세기 신학자들이 즐겨쓰는 영성이란 매우 혼란을 가져오는 애매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칼빈의 신학에서 만큼은 그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영성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경건이란 개념으로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필자는 김재성 교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거기에다 칼빈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연구 및 방대한 자료 인용을 통해서 역작 「칼빈의 삶과 종교개혁」을 저술한 공로에 찬사를 드려마지 않는다. 실제로 본 연구는 그로부터 큰 빚을 질 정도로 그 업적에 은혜를 입었다. 하지만 소위, ‘경건이냐 영성이냐’에 대한 용어 채택의 문제에 관한 한 필자는 김재성 교수의 입장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은 어디서에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정통 교회에서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고, 그것을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여왔다. 삼위일체 논쟁은 기독교 교리사에서 한번도 그친 적이 없었다. 정통 교회는 그 교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왔다. 그만큼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신학의 중심 용어가 되어왔다.
 
 
 
 경건 영성
 
 
 
 마찬가지로 영성이란 말 역시 성경의 용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이란 역사적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신앙 양태로서, 혹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응답해 온 인간의 신앙심으로 이해되어 왔다. 각 학자들마다 그 개념에 따라 차이가 있기 하지만, 대체로 영성은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기도와 말씀, 예배와 성찬, 그리고 묵상과 영적 사고 등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신앙과 삶을 표현해 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거기에다 영성이란 용어는 일종의 신학적인 주제로 사용되어 온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가령, 교의 신학, 역사 신학, 실천 신학 등과 같이 신학의 방향과 특성에 따라 채택된 신학의 한 주제가 바로 영성신학이다. 따라서 영성이냐 경건이냐의 문제보다는 개혁주의 영성신학의 정립이 더욱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라고 본다. 칼빈의 경우에 있어서도, 영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들은 그를 영성의 거장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 영성의 뼈대요, 핵심으로서 경건을 고찰한다면 개혁주의 영성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더구나 필자의 관점은 개혁주의 영성신학은 교의 신학의 각 분야 곧, 신론, 기독론, 인간론, 성령론, 교회론 등을 비롯하여 역사 신학 및 실천 신학과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거기에다 영성신학은 신학과 현장, 교리와 삶의 연결 고리로서 그 역할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이다. 사실 개혁신학의 한계가 이 부분에 있지 않았는지 지적하고 싶다.
 
 
 
 칼빈의 입장대로, 개혁신학은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할 신학이다. 말씀이 가라는 곳까지 가며, 멈추라는 곳에서 멈추는 것이 개혁신학의 중심 사상이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고, 말씀의 권위 앞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개혁자의 후예들이다. 더욱이 개혁 신학은 교리나 신학적 규범에 매여 있는 죽은 신학도 아니다. 개혁신학은 생명의 신학이요, 삶의 신학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부 개혁신학 라인에서는 생명력을 상실한 채 탁상 논쟁을 일삼기도 했다. 특히 오늘날 교회의 정황을 볼 때 더욱 그렇다. 개혁 신학의 교회론과 선교론에 근거해서 헤아릴 수 없는 교회를 세웠다. 거기에다 신학생을 무수히 양산하기도 했지만 교회의 생명력은 점점 더 약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의 빛은 날이 갈수록 시들어가고 있다.
 
 
 
 그러기에 가장 우선적으로 신학의 갱신은 우리 시대의 절대적인 요청이다. 하지만 이론 신학으로는 교회를 살릴 수 없다. 생명력이 없는 탁상 신학으로는 시들어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빛을 발할 수도 없다. 이제는 살아 숨쉬는 신학, 생명력을 발하는 현장 신학으로 교회에 불꽃을 지피워야 한다. 교회를 살리려면 신학이 변해야 한다. 신학교도 재정비되어야 한다. 이제 개혁신학 라인에서는 하찮은 용어의 논쟁은 중단하고 현장을 살리는 생명의 신학으로의 그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칼빈이 지향했던 바가 아니던가! 존 리스(John H.Leith)의 말대로, 칼빈에게 있어서 “신학은 이론적인 학문이 아니라 실천적인 학문”이었다.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16세기의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목숨을 위협을 극복하고 오직 하나님을 높이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쌓았던 경건의 능력이 칼빈으로 하여금 종교 개혁의 거장이 되게 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이제는 신학이 교회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능력을 공급하는 능력있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신학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삶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살리는 것도 가장 절실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목표와 과제를 이루어 가는 것이 앞서간 개혁자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는 길이라고 본다. 이에 필자는 나중에 부록에서 영성의 개념이나 문제점들을 밝히겠지만, 영성 회복이야말로 교회를 살리는 길이며, 개혁주의 영성신학의 정립이야말로 신학과 신앙 갱신의 길 중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여기에서 필자가 채용한 영성신학이란 넓은 의미에서는 신학과 현장을 연결하는 역동적인 고리 역할을 할 신학적 주제의 개념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 심지어 신학과 교리에 생명력을 회복하는 방편으로서의 영적 주제의 개념을 의미한다(이 부분은 나중에 부록에서 언급할 터이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경건을 칼빈의 영성을 특징짓는 중심 사상으로 간주하고, 개혁주의 영성신학의 출발점을 칼빈에게 두려고 한다. 동시에 그의 영성을 ‘경건영성’이라 명명하면서 본 논고를 이어가려고 한다.
 
 
 
 경건 영성이 형성된 배경
 
 
 
 칼빈은 영성이란 말보다 경건이란 말을 즐겨 사용했다. 칼빈 신학에 있어서 경건은 추구해야할 최종 목표였다. 그의 생애는 경건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순례길이었다. 그 만큼 칼빈의 신학과 생애에 있어서 경건은 매우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칼빈은 왜 그렇게 경건을 강조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의 경건 영성의 형성 배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이제 본 장에서는 칼빈의 경건 영성이 형성된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경건 운동
 
 
 
 칼빈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종교적으로 폭발 전야에 이를만큼 카톨릭의 만행이 극에 달했고, 경건주의 사상이 풍미했다. 사상적으로는 기독교 인문주의가 성행하여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칼빈의 영성에 형성에 영향을 끼친 것들에 대해 가노키지(A.Ganocy)는 네가지 요인을 꼽는다: 유명론, 신비주의, 절충주의, 인본주의. 이런 요인들들과 함께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당시 평신도 영성 운동의 주류였던 ‘신경건 운동’이었다. 요셉 리차드(L.Joseph Richard)가 이런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당시 스콜라 신학은 지성주의로 치달았고, 수도원의 타락은 극에 달했다. 거기에다 로마교회의 딱딱한 분위기 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디벤터의 게르하르트 그루테(Gerard Groote)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철저한 회개와 개인적인 경건을 강조했다. 특히 그로테는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부르짖었다. 자신의 저서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지식의 근원과 여러분의 삶의 모범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는 진정한 지식을 복음에 관한 지식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성경 연구에 전념하면서도 사변적인 신학은 거절했다. 설교를 통해서 교회를 개혁하려는 노력을 쏟아부었다.
 
 
 
 이에 많은 평신도들이 그를 따르게 되어 새로운 영성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런 양상이 14세기 후반에 독일 전역에 퍼졌고, 네덜란드까지 전해졌다. 이 운동을 가리켜서 ‘신경건 운동’이라 칭한다. 이 운동에서 주창한 내용은 그리스도께로의 회귀, 개인적인 경건, 공동 생활을 통한 자급자족 등이었다. 특히 그들은 스콜라 신학의 사변적이고 지적인 면을 철저히 경계하고, 영성의 원천을 오직 성경에 두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강조했고, 도덕적인 진보와 삶의 변화가 그들의 목표였다.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빠져나와 자신들의 영혼을 완성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열성이 뜨거웠다. 이런 신앙적인 목표를 위해서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신경건 운동은 영성의 한 흐름으로서 15-16세기 유럽 곳곳에서 확산되었다. 이런 경건 운동을 대표할만한 사람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였다. 그의 저작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그리스도인의 영성 교과서라고 할 만큼 영성에 대해 탁월한 작품이다. 그의 영성 사상은 이미 성행하고 있던 신경건 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지침들이나, 금욕을 통해서 개인의 내면적 경건을 강조하는 것 등 신경건 운동에서 주창한 것들과 흡사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건 운동의 영향은 에르스무스(Erasmus) 학파나 루터(Luther)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칼빈에게서도 그와 같은 영향이 발견되어진다. 예를 들면, 개인의 경건을 철저히 강조하는 것이나,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성경을 강조한 것, 그리고 성화를 위한 자기 부인 등은 신경건 운동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프랑스의 인문주의자들의 영성
 
 
 
 16세기 프랑스 종교 및 사상의 흐름은 신경건 운동과 인문주의가 주류를 이루었다. 신경건 운동은 평신도 영성 운동으로서 일종의 과도기적 경건 운동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신경건 운동은 한때 급물살을 타고 성행했으나 곧바로 다른 경건 운동에 동화되었다. 하지만 인문주의자들은 당대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칼빈도 개혁의 길에 들어서기 전까지 인문주의 학자가 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생각할 정도였다. 더욱이 인문주의자들은 영성에 대한 독창적인 공헌이 돋보인다. 종교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인문주의나 그 영성의 영향은 적지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원래 인문주의란 말은 최초에 사용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페트라취(Franceco Petrarch)였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중시했다. 그런 문제를 생각하는 인간의 철학과 사상을 강조했다. 소위 그는 “인문주의적 연구”를 끊임없이 주창하였다. 그는 인문주의에 대한 공헌과 함께 깊은 내면의 영성을 이룩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페트라취의 영성은 “경건”으로 표현된다. 인문주의자들은 그 경건을 가리켜서 “체험된 경건”으로 불렀다. 그는 인간에게 가장 가치있는 지식은 자기 자신과 운명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려고 하면 자시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기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자기 지식은 신앙과 성육신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경건을 최고의 덕목으로 보았다.
 
 
 
 프랑스 인문주의에서 쟝 게르송(Jean Gerson)은 빼어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프랑스 사상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의 대가였다. 루터(Luther)나 멜랑톤(Melanchthon)이 종종 그의 저서를 참고했다. 심지어 루터는 신앙고백서에서 10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그를 언급하기도 했다. 게르송의 생애에서 가장 큰 주제는 개혁의 필요성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개혁은 영적 생활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따라서 그는 영성과 하나님에 대한 명상을 종교 개혁에 대한 첫 번째 조건으로 보았다. 영적 생활에서는 기도와 자기 성찰과 겸손을 강조했다. 게르송 역시 성경을 신학의 기초로 삼았다.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된 성경으로 돌아가야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성직을 신성으로 돌리고, 신학과 경건을 조화시키려고 일생 동안 노력했다.
 
 
 
 프랑스 인문주의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에라스무스(Erasmus)이다. 그는 「훈련교본」에서 “그리스도에게 받아들여질만한 성품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삶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이 책에서 에라스무스는 교리보다는 교육에 중점을 둔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신학을 주창했다. 이는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신학적 방법론이었다. 더구나 그는 사변적인 스콜라 신학을 반대했고, 추상적인 신앙 양태도 거절했다. 외적인 의식보다는 영적인 삶을 강조했다. 하지만 참된 경건은 마음의 태도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자선이나 박애의 행위 속에서도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영성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신경건주의자들처럼 끊임없이 영적 생활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신경건주의자들과는 철저히 구별했다. 에라스무스에게 있어서 영성은 ‘경건한 지식’으로의 표현되었다. 그러한 경건은 프랑스 인문주의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
 
 
 
 위에서 살펴본 신경건 운동이나 프랑스 인문주의자들의 영성은 프랑스 개혁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칼빈 역시 그런 분위기 가운데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칼빈이 경건을 강조한 이유나, 경건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물론 칼빈은 회심 이후에 인문주의와 단절했다. “유익한 정도 이상 철학자들의 견해를 따르지 않는 것”(II.2.4)이 낫다고 지적했던 것을 보면 인문주의와의 단절이 명백하다. 본 연구의 목적 상 신경건 운동이나 프랑스 인문주의자들의 추구한 영성을 고찰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것들을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바로 평가하는 것은 앞으로의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칼빈은 신경건 운동이나 프랑스 인문주의자들의 영성을 넘어선 또 다른 영성의 세계를 열었다는 점이다. 칼빈은 신경건주의자들의 수도원 영성을 배격하고, 오직 말씀 중심에서 우러나온 삶 속에서의 영성을 추구했다. 그것은 칼빈의 영성에서 개혁주의 영성신학의 모델을 삼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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