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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경태
작성일
 
2011/02/21 22:39:18
 
조회수
7388
글제목
 
미국의 1,2차 대각성(Great Revival) 운동에 대한 고.....



미국의 1,2차 대각성(Great Revival) 운동에 대한 고찰
 
 
 I. 서론
 
 1. 시대적 상황과 배경
 
 미국 내 이주 1세대의 뜨겁고 간절했던 청교도 신앙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리고 상업과 경제적 부의 팽창으로 인해 서서히 냉각되어 갔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지적인 종교가 미국 내에 들어오고, 아울러 합리주의 사상의 발흥은 교회에 있어 성경의 권위에 대한 신앙을 파괴하였고, 대다수 국민들로 하여금 종교에 무관심하게 하거나 적대시하게 하였다.
 
 제2, 제3 세대 청교도들은 그들의 부모들 보다 훨씬 덜 “종교적”이었고, 교회는 그런 가운데서도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른 바 불완전한 계약 혹은 반길계약(Half-Way Covenant)을 승인하여 참된 신앙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세례를 주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반쪽 관계에 만족하여 주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멀리하게 되었고, 이러한 여파는 뉴잉글랜드 전역으로 확산되게 되었다.
 
 신앙의 순수성을 외치며 신대륙에 들어온 청교도들은 100년의 역사가 지나면서 교회가 혼탁해지고, 그 순수성을 잃어가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1679년 보스톤에서 열린 장로교 대회(Synod)에서 개혁의 필요성이 논의 되고, 뉴잉글랜드에 내려질 주의 심판을 초래할 만한 죄악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그 후 30년간 열심 있는 목회자들이 더 악화된 상태에 대해 한탄하며 신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1727년에 뉴잉글랜드와 그 이웃 지역을 혼란케 한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의 표식으로 간주되어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교회에 몰려들기도 했으나 그런 현상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이런 정치적 상황 속의 혼란과 신앙적 침체는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가 그러하듯이 새롭게 정리되고, 부흥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II. 본론
 
 1.제 1차 대각성운동(The First Great Awakening) : 1720년대 ~ 1770년대
 
 (1)대각성운동의 확산 과정
 
 1)미국 중부의 뉴저지주의 부흥 운동
 
 미국의 제 1차 대각성운동은 북동부의 뉴잉글랜드의 부흥, 중부 뉴저지주의 부흥, 남부에서의 부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중 가장 먼저 시작된 부흥은 중부의 뉴저지주의 화란 개혁교회의 데오돌 프렐링하이젠(Theodore Frelinghuysen)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그는 회중들의 미온적인 신앙을 공격하며, 자주 회중과 마찰을 일으켰지만 그의 직설적인 설교가 결실하면서 1726년경부터 능력의 설교자가 되어, 회개의 필요성, 헌신적인 생활, 그리고 평신도들의 활동을 강조하였고 이것이 효시가 되어 미국 전역에 부흥의 물결이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프렐링하이젠이 화란교회를 중심으로 부흥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장로교에 부흥의 물길을 트게 한 사람은 바로 길버트 테넌트(Gilbert Tennent)였다.
 
 그는 통나무 대학(Log College)을 설립한 윌리엄 테넌트(William Tennent)의 아들로 그의 두명의 형제들과 다른 15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프린스톤의 전신이 된 뉴저지 대학의 기초가 된 통나무 대학에서 아버지로부터 목회를 위한 훈련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테넌트 목사는 그의 학생들에게 언어, 윤리 그리고 신학의 훈련을 시켰을 뿐 아니라 그들이 불붙은 복음주의자로서 보냄을 받도록 복음주의적 열정을 주입시켰다.
 
 “길버트 테넌트를 비롯한 통나무 대학 출신들은 모두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는 프렐링하이젠의 도움으로 복음적 부흥운동을 일으켰는데 “특히 ‘회심하지 않는 목사직의 위험성’이란 설교를 통해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2)조난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에 의한 뉴잉글랜드의 부흥운동
 
 프렐링하이젠과 길버트 테넌트에 의한 부흥운동이 종교적 무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사막 지대에 단지 영적 활기를 주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면 미국의 제 1차 대각성운동의 본격적인 주류는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한 부흥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한 부흥은 메사추세츠 노쓰햄튼에서 시작 되었는데 1733년 12월말에 ‘놀란 만큼 역사하기 시작한 성령’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부흥이 시작되었다. 당시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점령당한 자처럼 행동하였다고 하였고 그 후 그가 말하기를 ‘이 도시는 그 당시처럼 사랑에 가득 차있거나 기쁨에 가득 차 있었던 때가 없었고 또한 그토록 비탄에 잠긴 적도 없었다’고 회고하였다.
 
 또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그의 설교는 대각성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 설교로 인해 깊은 잠에 빠졌던 청교도의 후예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고, 미국교회의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게 되었다. “그의 집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회개하고 각성하며 영원한 진노를 피하여 영생을 얻으려는 관심을 가졌고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진리를 이해하였으며, 영원한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3)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에 의한 부흥운동
 
 영국 부흥운동의 창시자로 활약한 휫필드는 일곱 번이나 미국을 방문하면서 미국의 지역적 대각성운동을 하나로 연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당시 가장 관대한 정신의 목사중 하나로 퀘이트교도, 침례교도, 루터교도, 모라비아파, 장로교도, 조합교회, 화란개혁파 등 모든 교파의 사람들에 설교할 수 있었다.”
 
 특히 “그의 두 번째 방문인 1740년 9월에는 뉴잉글랜드에서 6주간동안의 전도 여행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가장 일반적인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30여개의 종교 협회가 조직 되었고 교회마다 성도들로 가득 찼으며, 그 후 3년 동안 뉴잉글랜드뿐만 아니라 뉴욕, 뉴저지, 펜실바니아, 메릴랜드, 그리고 버지니아에 있는 150여 교회가 대각성운동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2)제 1차 대각성운동의 결과
 
 1)교회의 성장
 
 1차 대각성운동은 미국 내 소수에 불과한 기독교 교회를 성장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조지 휫필드, 프릴링하이젠, 길버트 테넌트, 조나단 에드워즈, 그리고 그의 두 제자 조셉 벨러미와 사무엘 홉킨즈에 의해 교회는 급성장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뉴잉글랜드 교회인데 “30만 인구의 뉴잉글랜드에 부흥운동이 한창이던 해인 1730년대 말 2년 동안 약 25,000명이던 교인은 약 50,000명으로 불어났다.” 각성운동은 다시 선교 열정, 인류애, 교파간의 협력, 교육 기관의 설립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교회의 분열
 
 1차 대각성운동이 가져온 또 하나의 결과는 바로 교회의 분열을 촉진한 것이다. 그 대표적 교단이 바로 장로교인데, 미국의 장로교는 강력한 칼빈주의 전통에 근거한 영국의 청교도 전통에서 온 스코틀랜드-아일랜드 계통과 경건주의 -부흥운동의 특징을 더 많이 지닌 뉴잉글랜드 출신들로 이루어 졌었는데, 이들은 1차 대각성운동을 거치면서 부흥에 대한 문제에 있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1741년 교단은 부흥운동을 찬성하는 신파(뉴잉글랜드 계)와 반대하는 구파(스코틀랜드-아일랜드 계)로 분열하게 되었다. 또한 “회중교회도 에드워즈를 중심으로 한 새빛파(New Light)와 찰스 촌시를 비롯한 예빛파(Old Light)로 나누어 졌고, 침례교 역시 부흥 추진파인 분리침례교와 부흥에 냉담한 정규침례교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2. 제 2차 대각성운동(The Second Great Awakening)
 
 (1)제 2차 대각성운동의 배경
 
 낭만주의로 대표되는 후계몽주의 영향으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영국에서는 옥스퍼드 운동이, 미국에서는 독립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미국인들의 삶, 특히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776년 7월 4일 발표된 독립선언서의 표어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였는데 이것은 청교도들이 갖고 있던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인간의 기본권으로 전향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1787년 제정된 미국 연방헌법에는 개인에 대한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그때까지 유지해 오던 정교일치가 사라지고 정교분리의 원칙이 삽입되게 되었다. 또한 신학적 사상에 있어서도 오랫동안 청교도들이 소중히 간직해 오던 구칼빈주의가 변천되기 시작했고, 민족주의가 발흥하면서 서서히 미국 기독교를 세속화 시켜 갔다.
 
 “학문에 있어서도 18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학문의 여왕이었던 신학은 단지 여러 학문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게 되었고, 1800년 이전까지 삶을 주관하던 것은 교회의 신학이었지만 1800년 이후에는 삶이 지성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자유주의 사조가 미국 내에서 유니테리안주의를 등에 업고 표면적으로 발흥하기 시작하면서 복음의 본질이 왜곡되고 회심의 필요성을 거부하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학문적, 신학적 사상은 신앙적으로 막대한 침체를 필연적으로 가져오게 하였다. 당시 미국의 신앙적 상태를 한 성공회 역사가의 말에서 잘 알 수 있는데 “그는 독립전쟁의 종결부터 1812년 사이의 기간은 영적인 생명이 중단된 시기이며, 이는 미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생명력이 저조한 시기였다고 하였다.”
 
 
 
 
 (2)제 2차 대각성운동의 과정
 
 1)대각성운동의 태동
 
 18세기 후반 미국의 최대 이슈는 종교가 아니라 혁명(독립전쟁)이었고 따라서 종교적인 문제는 침체를 달리고 있었으며 1740년대 이후 50년간 교회의 성장은 상당히 둔화되었다. 신앙을 찾아 신대륙에 온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은 1800년에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10도 채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사회적으로는 술집, 주점, 안식일 모독, 어린이 학대, 폭동과 방종이 대륙 전체를 휩쓸고 있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1796년 장로교 목사 제임스 맥그리디(James McGready)에 의해 서부 켄터키의 로간 지방에서 처음으로 2차 대각성운동이 시작되게 되었다. “그러나 2차 대각성운동의 최초의 표징은 이 보다 더 일찍 동부 버지니아의 작은 두 장로교 대학에서 1787년에 일어난 각성운동이었고.” 특별히 동부에서의 2차 각성운동은 1차 때의 순회 전도자들에 의한 각성운동과는 달리 지역 담임 목회자들에 의해 진행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2)서부에서의 각성운동 과정
 
 서부에서의 각성운동은 1797년에 켄터키 로건 지방의 능력 있고 담대한 복음 설교가인 제임스 맥그리디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교구민들과 함께 로건 카운티의 죄인들과 전 세계 죄인들의 회심을 위해 1년간 매월 셋째 토요일에 기도와 금식의 날을 가지면서 그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 되어 1805년까지 계속 되었다. 또한 “바튼 스토운은 제임스 맥그리디 목사와 함께 켄터키에서 캠프 집회를 개최 하였는데, 1801년 8월에 케인 리치에 열린 집회에 10,000명으로부터 시작되어 25,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여 하였는데, 이것은 오순절 이후 하나님의 성령이 가장 크게 쏟아 부어진 사건”이라 할 정도였다. 이렇게 시작된 하늘의 불은 테네시, 오하이오, 조지아, 남부 캐롤라이나로 확산되었고 마침내 동부 해안을 따라 일어난 동부의 부흥의 불길과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3)동부에서의 각성운동 과정
 
 1795년 예일대 학장에 취임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손자 디모티 드와이트(Timothy Dwight)는 불신앙이 성행하던 예일대학에 각성운동의 불을 지폈고 그 결과 1802년까지 225명의 전체 예일대학 학생 가운데 75명이 회심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고, 이런 각성운동은 주변의 다트머쓰(Dartmouth)대학, 윌리암스(Williams)대학, 암허스트(Amherst)대학 등으로 퍼져갔는데 이것은 19세기 복음주의의 급격한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유능한 인적자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드와이트 못지않게 2차 각성운동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나다니엘 테일러인데 그는 1822년 예일대학 신학부 교수로 임명 되면서 전통적인 에드워드 신학을 신흥 알미니안 신학과 융합시켜 뉴 디비니티라는 새로운 신학을 형성하였다.
 
 아쉘 네틀톤은 미국 2차 각성운동의 지도자로서 동부와 서부 코네티컷에서 부흥을 이끌었다. 또한 리먼 비처는 테일러리즘의 확산에 사명감을 가진 지도자로서 코네티컷의 리치필드에서 대각성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감당했다.
 
 
 
 4)찰스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에 의한 대각성운동과 칼빈주의의 수정
 
 찰스 피니는 1821년 회심을 경험하면서 변호사가 되려던 자신의 꿈을 버리고 ‘유망한 변호사 경력을 버리고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소송을 변호하도록 변호 계약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1824년 장로교 목사로 안수 받게 된다.
 
 전통적인 칼빈주의 방식과는 어긋나지만 뛰어난 부흥사적 기질을 가진 피니의 설교는 제퍼슨, 세인트 로렌스 지방의 작은 마을들과 1825년까지 웨스턴, 트로이, 유티카, 로움, 오번등의 지역에서 놀라운 부흥의 물결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도시에서 부흥 운동을 처음 시작한 인물이었으며 부흥 운동의 새로운 방법을 처음 도입한 사람이기도 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교회사가인 시드니 알스트롬(Sydney Ahlstrom)은 피니를 가리켜 ‘현대 부흥운동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피니는 어떤 측정 표준에 의해서 보아도 미국 역사에 있어서 막대하게 중요한 사람이다’고 하였다.”
 
 칭의에 대한 피니의 견해는 개혁주의 신학의 알미니안주의적 해석이라 할 수 있고, 성화에 대한 그의 입장은 웨슬리의 신학적 유산의 미국식 변형이라 할 수 있다.
 
 피니는 신학적 방법은 실용주의적이었기 때문에 부흥은 단순히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따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었다. 그는 부흥을 마치 씨를 심고 길러서 추수하는 것이라고 비유했는데 이는 부흥이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이며 기적이라고 말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칼빈주의적 부흥의 수정을 의미했다.
 
 
 
 
 (3) 2차 대각성운동의 영향과 결과
 
 1)교회의 성장
 
 2차 대각성운동은 미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먼저 미국의 전통적인 칼빈주의가 알미니안주의 쪽으로 수정되었으며, 이와 함께 예일을 중심으로 한 뉴 디비니티와 유니테리안 사상 같은 자유주의가 발흥되게 되었다.
 
 아울러 미국 내 교회의 성장을 가져오면서 특히 감리교와 침례교의 대단한 성장을 맞게 하였다. 미국의 감리교는 1776년 독립전쟁 이전까지는 교파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1784년 크리스마스 대회를 통한 미국 감리교회의 조직은 칼빈주의 청교도 운동이 주도해온 미국기독교에 복음주의적 알미니안주의가 뿌리 내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감리교는 1820년에 침례교를 앞질렀고 184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장 큰 교단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것은 감리교가 순회설교자 제도를 가지고 있어 수많은 감리교도들이 직접적으로 선교현장에 뛰어들어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한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감리교와 더불어 2차 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크게 성장한 미국 내 교파는 침례교인데, 미국 침례교회는 2차 대각성운동을 거치면서 회중교회, 감독교회, 장로교회를 능가하여 미국에서 제 2의 개신 교단으로 남부, 특히 버지니아에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감리교나 침례교 보다는 성장률이 크게 낮았지만 장로교 역시 2차 각성운동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데 장로교의 경우는 교세의 확장에서 보다는 교단을 확고히 다지는 방향의 성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2)교회의 분열
 
 1차 각성운동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2차 각성운동의 결과도 교회의 분열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먼저 장로교가 회중교회와의 통합에 대한 견해차이로 신학파와 구학파로 나누어지게 되고, 또한 노예 폐지에 대한 문제로 찬성하는 남부 쪽과 반대하는 북부 쪽으로 다시 분리되게 되었다. 동일한 문제에 의해 감리교도 남부가 분열하여 남감리 교회가 조직되고, 1845년에 침례교도 미침례교 연맹과 남침례교로 분열되어 독립된 길을 걷게 되었다.
 
 
 
 3)선교와 개혁
 
 2차 대각성 운동은 국내와 해외의 선교를 촉진하고 도덕 개혁이나 금주와 같은 사회 개혁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어 선교회가 조직되어 선교를 촉진시키게 되고, 교육회들이 결성되어 교육의 질이 한층 높아져 도덕개혁을 통한 사회개혁이 추진되었다.
 
 
 
 4)이단의 발흥
 
 2차 대각성운동이 가져온 부정적 영향은 바로 이단들의 발흥이다. 안식교, 만인구원, 스웨덴보르그, 몰몬교 등 다양한 이단 사상이 바로 2차 각성운동의 바람을 타고 미국에 생겨나거나 상륙하게 되었다.
 
 
 
 III. 결론
 
 17세가 말엽 미국기독교는 낙관주의 사회상이나 인생관과 편승되면서 미국 내 청교도 전통은 조금씩 그 영향력을 상실했으며 교회도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차 대각성운도이 발생하여 칼빈주의 신앙이 복고되어 교회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특히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해 개척 시대의 청교도 신앙이 좀 더 칼빈주의적 부흥운동 형태로 복고 되게 되었다.
 
 칼빈주의는 1차 각성운동을 통해 미국기독교의 주체세력임이 확인 되었고, 1차 각성운동의 지도자들과 당대 교인들 역시 신앙의 정체성을 칼빈주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에드워즈 식 칼빈주의는 전통적인 칼빈주의 사상과 부흥운동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독립전쟁이후 미국 사회가 종교적인 문제 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들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미국의 기독교 역시도 전통적인 청교도 신앙에서 서서히 이탈하여 좀 더 인본주의적 방향으로 수정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18세기 말엽 일어난 2차 각성운동은 다시금 교회에 활력을 불어 넣었지만 전통적인 칼빈주의 사상이 보다 인본주의적 방향으로 수정되는 결과와 더불어 칼빈주의 신앙의 쇠퇴와 새로운 낙관주의적 인간관이 형성되게 되었다. 찰스 피니는 2차 각성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한 인물로 전통적인 에드워즈식 칼빈주의가 그에 의해 알미니안주의적 칼빈주의로 수정되게 되었고, 이것은 미국 내 특히 감리교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2차 부흥운동의 결과 미국 내 교회들이 크게 성장하는 긍정적 결과와 더불어 신율적인 신앙이 보다 자율적인 신앙으로 변천되고 세속화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19세기부터 전개되는 미국의 현대교회사가 전통적인 신앙을 보존하려는 복음주의자들과 현대사조와 친화하려는 현대주의자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의 역사로 펼쳐지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 참고 서적
 
 1. 윌리엄 W. 스위트 저, 김기달역, 미국교회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8년
 
 2. 라이온사 편집, 송광택 역, 교회사 핸드북,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5년
 
 3. 심창섭, 채천석 공저, 근·현대 교회사, 서울, 솔로몬 출판사, 2001년
 
 4. 박용규 저, 근대교회사,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97년
 
 5. 홍철 저, 미국 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 서울, 기독교 문서 선교회, 2005년
 
 
 
 리포트를 준비하며 느낀 점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 100주년이 되는 2007년도에 대한 교계와 개인의 관심과 기대가 증폭하는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미국 교회사 가운데 있었던 1차와 2차에 걸친 대각성운동을 고찰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시대적으로 신앙이 침체기를 맞게 되고 교회의 성장이 멈추는 때가 되면 다시 사람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게 하시는 일들을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미국 교회사에 있었던 대각성운동은 그것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시대적 상황에 있어서 1,2차 부흥운동 모두 암울한 침체기에서 벗어나 교회에 새로운 활력과 부흥과 성장을 가져다주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가 처해 있는 교회의 정체와 기독교인의 감소라는 상황이 오히려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 부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
 
 또한 미국 대부흥운동에 있어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던 조나단 에드워즈나 조지 휫필드, 찰스 피니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모두가 당대에 최고라 할 수 있는 신학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이런 사실은 현재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내게 큰 도전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그들이 하나님의 쓰임을 위해 준비된 자들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준비된 자들을 침체된 미국 교회를 위한 부흥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오늘날과 같이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급격한 사회 환경의 변화 가운데서 어떻게 이전과 같은 부흥의 역사를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다.
 
 경제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문명적으로는 분명 예전-미국의 부흥운동 당시의 상황-의 상황과는 많이 다른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미국의 1,2차 대부흥이 일어날 무렵의 사회적 상황과 오늘날의 그것은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2차 부흥이 있기 전에 미국 사회는, 특히 2차 부흥이 있기 전의 환경을 살펴보면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인본주의가 급속하게 퍼져 있었고, 모든 문화, 철학, 신학의 방향도 인간 중심으로 변질되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바로 오늘날의 상황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을 지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지나면서 급격하게 인간의 감정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 상황으로 급변하였고 모든 것, 심지어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인간의 감정에 의해 신앙이 좌우되는 시대가 바로 오늘날의 시대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시작된 주5일 근무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신앙적인 부분에서 여가 활용이라는 달콤함으로 돌리기 시작했고, 이것은 교회를 출석하는 것을 점점 더 형식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교회에 출석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삶에 걸림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극심한 출산율의 저조 현상은 핵가족을 지나 가정의 파괴 혹은 기형을 가속화 시키고 있고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과 결합하여 점점 더 자기 자신만을 중시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더욱 견고히 해가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에 있어 교회는 여전히 뚜렷한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단지 이런 비 신앙적 사회 현상에 맞추어 가고자 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성장을 멈추었고, 이제는 기독교인의 수가 감소하는 지경에 다다랐으며 그 어느 누구도 우리 세대 이후 세대의 신앙에 대해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 준비된 자들을 통한 부흥의 역사를 희망하며 바랄 시기에 바야흐로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사무엘상 7장 2절에 보면 “궤가 기럇여야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블레셋에 의해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긴 이후 20여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사무엘상 7장 3절 이하에서 사무엘에 의해 진행되는 미스바 대성회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1,2차 미국의 대부흥이 있기 전의 미국의 상황과 흡사하며,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가 처한 현실과 너무나 흡사하다 할 수 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으며 우리 한국 교회 내에 하나님의 은혜와 부흥을 사모하는 마음이 무르익고 있으며 교회는 새로운 부흥과 변화를 꿈꾸며 기도하고 있고, 사회적 현상들도 그 때가 임박하였음을 여러 가지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들어 도구로 사용하실 준비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족의 부흥을 가슴에 품고 민족의 죄악을 눈물로 회개하며 자신의 것인 양 하나님 앞에 서있는 그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미국의 1,2차 대부흥의 도구로 귀한 그분의 일꾼들을 사용하셨듯이 바로 그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실 것이다.
 
 또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 부족한 나도 뜨거운 마음과 사명감을 가지고 사용되기를 소원하며 그것을 위해 더 열심히 자신을 준비해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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